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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언제 그랬지…?”
2025년 9월, 경기 안양시에서 치매를 앓던 노인 A씨가 슈퍼에서 과자를 집어 나왔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기억조차 못하는 그를 위해, 자녀는 절도액 30만원의 여섯 배인 200만원을 합의금으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데일리 기사(2025.10.02.보도)는 이런 사례를 두고 ‘치매 장발장’이라는 슬픈 현실을 조명했습니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초고령 사회에서, 우리는 이들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만이 답인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치매와 경범죄를 둘러싼 이 복잡한 문제는 사실 돌봄과 제도의 빈틈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사회적 과제입니다.
🧩 잊어버린 억제력: 뇌 질환이 빚어낸 범죄
치매 환자가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의도적인 범행이 아니라 충동을 억제하는 뇌 기능이 고장난 결과입니다. 이데일리 기사에 인용된 아주대의료원 이윤환 교수의 설명처럼, 일반인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지만 치매 환자는 억제 기능이 작동하지 못합니다. 이는 의학계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Nature에 게재된 2025년 메타분석 논문은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에서 충동성, 반사회적 행동, 절도가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밝혔습니다. 즉, 이들의 범죄는 의지의 영역이 아닌 뇌 질환이 빚어낸 그림자인 셈입니다.

⚖ 법의 저울: 치매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다
그러나 현행법은 치매 환자의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곽준호 변호사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치매 노인이 절도 사건에서 무죄를 받으려면 심신상실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는 혼자 외출이 힘들 정도의 중증이어야만 합니다.” 결국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증 치매는 법적으로 책임능력을 인정받아 벌금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치매 환자의 범죄 통계를 따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경찰 통계 항목에 ‘치매’는 없고 ‘정신장애’, ‘미상’으로만 분류됩니다. 치매 범죄가 늘고 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숫자로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 이웃 나라의 길: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
이데일리 기사는 일본의 선진 사례를 소개합니다. 일본은 이미 2023년 ‘치매기본법’을 제정해 치매 환자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고베 등 일부 지자체는 치매 환자가 저지른 경범죄에 대해 지자체 차원의 배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피해자와 가족이 합의금을 직접 부담해야 합니다. 기사 속 수원 사건처럼 치매 노인이 2만원어치 아이스크림을 훔쳤다가, 점주가 피해액의 50배인 100만원을 요구해 합의가 불발되고 결국 벌금형이 선고되는 비극이 발생합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일본은 사회가 분담하는 방식, 한국은 가족이 떠안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돌봄의 무게: 함께 나누는 사회적 품
학술 연구들은 돌봄 부담을 홀로 짊어진 가족의 비극적인 결과를 경고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는 치매 가족 사건 중 ‘돌봄 스트레스가 살인이나 자살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치매 환자의 소액 범죄를 범죄 그 자체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돌봄의 실패 신호로 볼 것인지는 우리 사회의 선택입니다. 돌봄을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질 것인지가 중요한 사회적 품을 결정하는 갈림길입니다.

기억 너머의 연대
“치매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느냐”라는 점주의 말은 우리 사회의 솔직한 불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매 환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치매 환자의 작은 범죄를 처벌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그들의 질환과 고통을 외면하게 됩니다. 이제는 범죄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을 넘어, 치매 사회에 걸맞은 돌봄과 제도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을 위해 법과 복지가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인간다운 품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 이데일리. 「초고령 사회의 그늘 '치매 장발장'…그들을 위한 안전판이 없다」 (2025.10.02)
- Criminal minds in dementia: A systematic review and quantitative meta-analysis (Nature, 2025)
- Criminal Trajectories Across the Dementia Timeline (PMC, 2024)
- 고령범죄자의 치매와 형사정책에 관한 고찰 (DBpia, 2023)
- 치매 가족의 자살 및 살인사건 분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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